우리는 겪었다.

우리는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거지처럼 살아야 한다는 체제하에서
우리의 어린 시절을 학교와 학원에 강탈당해왔다.

우리는 사람이 고깃덩이처럼 등급이 매겨져
1등급은 의사, 5등급은 치킨집 사장님, 9등급은 굶어 죽을 것이라는
경멸과 공포 속에서 자라야 했다.

우리는 급우들을 공동체를 이룰 친구가 아니라
밟고 올라서야만 하는 적이라고 배워야 했다.

우리는 성적을 올려야 한단 이유만으로
인권을 강탈당한 채 사람답게 살 수 없었다.

우리는 우리의 머리를 기를 수도,

우리는 우리의 얼굴에 화장할 수도,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옷을 입을 수도, 없었다.

이 체제는 우리의 정신과 시간을 넘어서, 우리의 신체까지 예속하였고,
우리를 노예로 전락시킨 이 체제는 우리의 쉴 권리 또한 앗아갔다.

우리는 교육체제 하에서 밤늦게 집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지만,
늦은 밤 집에서 게임을 켜면 셧다운제가 우리의 쉴 권리를 차단하였다.

우리는 교육체제 하에서 밤늦게 모든 일과가 끝났지만,
PC방과 노래방을 비롯한 이 땅의 모든 여가 시설은 밤 10시가 되면 우리를 뱉어냈다.

우리는 등하교할 때마다 휴대폰을 압수당해야 했고,
영문도 모른 채 소지품을 검사받아야 했다.

우리는 심지어 학교에서 연애를 단속당해가면서,
인간으로서의 감정 또한 교육체제 하에서 재단 당하기를 강요받았다.

우리가 위의 제제로부터 벗어나려는 순간,
우리는 교무실로 끌려가 죄인처럼 매 맞아야 했다.

우리는 보았다.

매번 교육정책을 결정하는 이들은
교육의 문제가 있다며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교육개혁은,
우리의 처지를 개선시켜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행한 교육개혁은 그저,
수능에 어떤 과목이 추가되는지,
어떤 과목이 빠지는지,
어떤 과목을 어디까지 배울지...

우리의 처지는 교육정책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심지어 우리는, 교육정책을 넘어 사회 전반의 정책에서
우리 중고등학생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음을 보았다.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 교육감 선거에서
우리들은 결코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우리의 처지를 대변하는 희귀한 정치인을 발견하여
이에 대한 지지의 의사를 밝히면,
우리는 미성년자의 정치참여를 금지한 정당법과 선거법을 위반하였다며
범법자가 되어야 했다.

모든 정부정책의 결정은
우리가 얼마나 행복해질까가 아니라
우리를 얼마나 보호할 수 있는가가 기준이 되었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보호란
두발을 규제하고, 화장을 규제하고, 이를 어기면 때리는,
그런 보호였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는 수백 명 급우들이 타 있던 세월호의 운명을,
이 땅의 중고생 모두가 눈물짓게끔 만들었다.

우리는 처음에

우리가 힘들더라도 이것이 올바른 체제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우리는
이것이 옳지 않은 체제임을 알았지만, 폭력 앞에 외칠 수 있는 것은
저항의 단어가 아니라 공포의 비명뿐이었다.

이렇게 우리가 침묵하고 있는 동안

우리의 교육체제는 더욱 잔혹해지고,

우리의 인권은 더욱 참혹해지고,

이윽고 우리뿐만이 아닌 모든 사람의 삶이 피폐해져 갔으며,

정부는 위안부 합의를 통해 일본에 굴종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단행하며 역사를 왜곡하고,

우리민족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며 한반도를 평화의 땅이 아닌 전쟁의 땅으로 만들고,

정권을 비판하는 정당을 해산하고,

정보기관은 민간인을 감시하며,

세월호가 침몰하고,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 앞에 쓰러졌다.

이에 마침내 우리는,

일제에 궐기한 3.1 중고생들의 정신으로,

불의에 항거한 4.19 중고생들의 정신으로,

군부독재에 저항한 5.18 중고생들의 정신으로,

자주를 염원한 2002 촛불중고생들의 정신으로,

사회개혁을 외친 2008 촛불중고생들의 정신으로,

2016년, 오랫동안 잡지 않았던 촛불을 다시금 잡아 들었다.

우리는 촛불을 잡고 불의한 세상에 저항하였다.

우리가 촛불을 잡자
더 이상 급우들은 밟고 올라서야 하는 적이 아니라,
광장에서 함께 손을 잡고 세상을 촛불로 밝히는 동지가 되었다.

우리가 촛불을 잡자
학교를 마치고 가야 하는 곳은 지루하고 괴로운 학원이 아니라,
학원에선 배울 수 없던 것을 가르쳐주는 광장이 되었다.

우리가 촛불을 잡자
투표권 한 장 없이 노예처럼 살아가던 우리들은
이 땅의 역사를 진보시키는 주권자가 되었다.

우리가 촛불을 잡자
마침내 우리는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촛불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음을 밝히며
중고생이 들었던 촛불의 완성을 위해 단체를 만듦을 선언한다.

아직 우리의 교육체제는 그대로 우리를 고통 속에 신음하게 하고 있으며,

아직 우리의 학생인권은 땅에 떨어진 채 사람다운 삶을 살지 못하게 하고 있으며,

아직 우리의 투표권은 너무나도 미약하며,

아직 사회는 완전히 개혁되지 못하였고,

아직 조국은 통일을 꿈꿀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부패한 대통령을 쫓아냈듯,
이제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처지를 바꿔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교육체제를 개혁하여
더 이상 잔혹한 입시 하에서 어린 시절을 저당 잡히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학생인권을 쟁취하여
더 이상 매 맞을 두려움 하에서 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투표권을 쟁취하여
이 땅의 당당한 주권자로서 우리의 운명을 개척해나갈 것 이다.

우리 중고등학생들이 뭉치면,

3.1운동으로 일제를 공포에 떨게 하였고,

4.19혁명으로 독재정권을 끝장냈으며,

2002촛불집회로 자주적인 나라를 꿈꿀 수 있게 해냈고,

2016촛불집회로 대통령을 몰아내고 적폐를 청산할 밑바탕을 만들어냈다.

중고생이 뭉치면 능히 세상을 바꿔낼 수 있음을,
이제 우리는 명백히 알게 되었다.

이를 알게 된 우리는

교육체제를 바꾸고, 학생인권을 쟁취하며,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 조국통일에 앞장서서

우리 중고등학생들이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우리 나라를 헬조선이 아닌 살맛나는 당당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오늘 우리는, 촛불중고생시민연대를 결성한다.


2021년 2월 28일, 박근혜퇴진중고생촛불집회 대표 최준호가
촛불중고생시민연대와 이 땅의 중고등학생을 대표하여 선언함.